최근 정말 가슴이 쿵 내려앉는 일이 있었다.....
아이 학교에는 대학교에서 실습을 나온 심리상담사가 상주하고 있고,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고 있다. 나는 아이가 부모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학교에 있다는 것을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담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과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어요.”
응? 무슨 일이지?
시간을 잡았고 부득이하게 화상미팅을 하게 됐다. 그리고 상담사가 꺼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가 상담시간에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한 것이 생각지도 못한 큰 불씨(?)가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가 bamboo stick으로 손바닥을 때린 적이 있어요.”
“손 들고 벌을 서기도 했어요.”
두둥……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집이나 학교에서 체벌을 지금보다 흔하게 접했고, 나 역시 어느 정도의 체벌을 훈육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며 자랐던 세대다.
그렇다고 한국에서는 체벌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나에게는 ‘아이를 훈육하면서 회초리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호주의 아동보호 시스템 안에서는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 집에도 얇은 대나무 회초리가 있었다.
아이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행동했을 때 손바닥을 때리는 용도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에게 손바닥을 몇 대 맞을 것인지 물어보고 때렸었다.
내 나름에는 “네가 다른 사람을 때리면 상대방도 이렇게 아프다”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훈육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아이를 신체적으로 체벌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에는 회초리를 사용하지 않고 손을 들고 10분, 15분 정도 서 있게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다 그것도 하지 않게 됐고, 지금 우리 집의 벌은 아이패드나 스크린타임 제한으로 바뀌었다.
요즘 우리 집에서 가장 강력한 벌은 아이패드 일주일 금지.
이게 회초리보다 훨씬 강력하다.ㅋㅋ
호주의 Mandatory Reporting이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도 빅토리아주의 Mandatory Reporting(의무 신고) 제도를 제대로 찾아보게 됐다.
Mandatory Reporting은 특정 직업군이 업무 중 아동학대와 관련해 일정한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Child Protection에 보고해야 하는 제도다.
빅토리아에서는 교사와 교장, 의사와 간호사, 경찰뿐만 아니라 registered psychologist와 school counsellor 등도 mandatory reporter에 포함된다.
그럼 아이가 “엄마한테 맞았어요”라고 하면 무조건 신고되는 걸까?
그런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의 Mandatory Reporting 기준에서는 업무 중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아이가 physical abuse 또는 sexual abuse로 인해 significant harm을 입었거나 입을 위험이 있고,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를 그 피해로부터 보호하지 않았거나 보호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Child Protection에 보고할 의무가 생길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reasonable grounds는 반드시 학대 장면을 직접 목격했거나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가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전문가가 상황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상담사나 교사가 직접 학대 여부를 조사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상황이라 판단되면 관련 절차에 따라 보고하고, 이후의 판단과 조사는 관계기관의 역할이다.
그래서 아이가 상담 중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상담사 입장에서는 그냥 “그랬구나” 하고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공식적인 Mandatory Reporting 기준과 자세한 내용은 아래 빅토리아 정부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Victoria Government – Mandatory Reporting 안내
상담사는 아이가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고, 나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아이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신체적으로 행동했을 때 얇은 대나무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린 적이 있었다는 것, 아이에게 몇 대 맞을 것인지 물어본 뒤 손바닥을 때렸다는 것, 하지만 나 역시 신체적 체벌이 마음에 편하지 않아 이후에는 손을 들고 일정 시간 서 있게 하는 방법으로 바꿨고 지금은 그것도 하지 않고 스크린타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훈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무슨 취조를 받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야기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담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아이 성향을 꽤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역으로 물어봤다.
“아이 성향을 계속 보고 계시니까, 이 아이에게는 어떤 훈육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졸지에 해명(?)하러 들어갔다가 육아상담까지 받게 된 셈이다.ㅋㅋ 상담사도 나도 웃으며 미팅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난 뒤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상담 중에 한 이야기를 어른들이 그냥 흘려듣지 않고 확인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면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그 아이를 발견하고 보호하는 안전망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훈육의 기준과 지금 호주에서 내 아이를 키우며 적용해야 하는 기준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호주에 살다 보면 음식이나 언어, 학교생활에서 문화 차이를 느끼는 일은 많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방식처럼 아주 개인적이고 익숙한 영역에서도 그 차이가 이렇게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경험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상담사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그냥 자기 경험 하나를 이야기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한마디에 엄마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내려앉았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겠지.ㅋㅋ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아이가 학교 상담사에게 집에서 있었던 일까지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나 역시 “집에서 있었던 일은 밖에서 말하면 안 돼”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아이가 필요할 때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당황스러운 해프닝이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도 또 하나 배웠다.
내가 자랄 때 당연했던 것이 지금도 당연한 것은 아니고, 한국에서 익숙했던 방식이 호주에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화상미팅이 끝난 그날.
우리 집 한쪽에 있던 그 얇은 대나무 회초리는……
그날부로 우리 집에서 영구 퇴출됐다.ㅋㅋㅋㅋ
아마 다시 등장할 일은 없을 것 같다.
※ 이 글은 빅토리아에서 아이를 키우며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Mandatory Reporting 및 아동보호 절차는 개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 글은 법률 자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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